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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적 없는 억만장자의 자서전을 판 남자, 클리퍼드 어빙 위조 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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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적 없는 사람의 자서전

1972년, 미국 출판계는 역사상 가장 기이한 사건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한 무명에 가까운 소설가가 억만장자의 자서전을 팔아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계약금을 손에 넣었는데, 정작 그는 그 억만장자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항공과 영화, 도박 산업을 주무른 거대한 부자 하워드 휴스였고, 그는 이미 15년째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완벽한 은둔자였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팔아넘긴 이 사건의 설계자가 바로 소설가 클리퍼드 어빙이다. 그는 물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침묵을 밑천 삼아, 세기의 특종을 세기의 사기극으로 바꿔 놓았다. 범죄사 연구자들이 이 사건을 두고 20세기 출판계 최대의 위조극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사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데 실패하며 무너진다면, 어빙은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는 확인할 방법이 아예 없는 이야기를 골랐고, 확인 불가능성 그 자체를 무기로 삼았다. 진위를 따질 유일한 증인이 세상과 등을 돌린 이상, 그의 이야기는 반박당할 수 없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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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거짓말의 조건

어빙의 발상은 단순하면서도 서늘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거짓말이란, 진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결코 입을 열지 않는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이 조건에 하워드 휴스만큼 잘 들어맞는 인물은 없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쌓았으면서도 오래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끊고 살았다. 기자도, 사진도, 공식 석상도 거부한 채 그는 세상에서 스스로 지워진 사람처럼 지냈다. 어빙은 여기서 결정적인 계산을 했다. 저렇게까지 철저히 숨은 사람이라면, 자신에 관한 책이 나온다 해도 굳이 세상에 나와 반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은둔이라는 특성이, 그에게는 완벽한 표적의 조건으로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어빙이 노린 것이 휴스의 재산이 아니라 휴스의 부재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억만장자에게서 무언가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라, 억만장자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지내는 틈을 훔치려 했다. 사람들은 흔히 유명한 인물일수록 그에 관한 정보가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휴스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면서도, 그 실체에 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공백이 존재했다. 어빙은 바로 그 공백을 자신의 이야기로 채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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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수 없는 제안

어빙이 대형 출판사에 내민 제안은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은둔의 재벌 하워드 휴스가 오직 자신에게만 인생을 털어놓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세계 어떤 언론도 15년 동안 접근하지 못한 인물의 독점 자서전이라는 말은, 출판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계약금으로만 76만 5천 달러가 책정되었고, 유명 잡지의 연재권과 문고본 판권까지 줄줄이 뒤따랐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계약이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계약을 떠받치는 근거라고는, 어빙이 내민 몇 장의 손편지가 전부였다. 훗날 돌이켜 보면 바로 이 지점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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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손편지

계획에서 가장 큰 관문은 출판사를 어떻게 믿게 만드느냐였다. 어빙은 한 잡지에 실렸던 휴스의 편지 사진 한 장에 주목했다. 그는 그 필체를 몇 주에 걸쳐 집요하게 연구하고 반복해서 따라 썼다. 마침내 그는 휴스가 직접 쓴 것처럼 보이는 편지들을 만들어 냈고, 그 안에는 자서전 작업을 어빙에게 맡긴다는 내용을 담았다. 출판사는 만일을 대비해 이 편지를 필적 감정 전문가들에게 넘겼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편지가 진짜 휴스의 필체가 거의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위조된 손글씨가 전문가의 눈마저 통과한 순간, 출판사의 마지막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대목은 전문가의 판단조차 절대적인 보증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필적 감정은 결국 표본과 대조본을 비교하는 작업인데, 어빙은 애초에 그 표본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도로 대담한 위조가 시도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위조의 규모가 너무 커서 오히려 진짜처럼 보이는 역설, 그것이 어빙의 계산 안에 이미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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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만남

이제 어빙은 존재하지 않는 만남을 진짜처럼 꾸며야 했다. 그는 휴스와 여러 차례 비밀리에 만나 긴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고, 사람들이 그 정황을 물을 때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휴스는 늘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신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은밀한 만남이라는 설정은 오히려 이야기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이니, 그와의 만남이 은밀한 것도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말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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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을 감추다

거짓말을 지탱하기 위해 어빙은 여러 장치를 준비했다. 먼저 그는 오랜 친구인 한 연구자를 끌어들여 휴스에 관한 자료를 샅샅이 모으게 했다. 실제 기록에서 얻은 세부 사실들을 촘촘히 엮자, 자서전은 거짓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생생해졌다. 그러나 가장 까다로운 문제는 돈이었다. 출판사는 계약금 수표를 휴스 앞으로 끊어 주었기 때문이다. 어빙의 아내는 스위스로 건너가 가짜 신분을 내세워 은행 계좌를 열었고, 휴스와 비슷한 이름을 대며 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었다. 억만장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조용히 부부의 손으로 흘러들어 왔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던 이 흐름이, 결국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거짓말은 대개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어빙 역시 원고의 신빙성을 위해 방대한 자료가 필요했고, 돈의 흐름을 감추기 위해 국경 너머의 은행과 가짜 신분까지 동원해야 했다. 사기의 뼈대는 단순했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곁가지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곁가지 하나하나가, 훗날 수사관들이 되짚어 갈 수 있는 발자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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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진실 사이의 간극

출판사가 믿고 있던 것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인물의 목소리를 독점으로 손에 넣었다고 확신했다. 편집자들은 원고를 읽으며 마치 살아 있는 휴스가 눈앞에서 말하는 듯한 생생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다. 어빙과 휴스 사이에 오간 만남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녹음도, 육성도, 실제 대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출판사가 손에 쥔 것은 한 소설가의 상상력과 정교하게 위조된 편지 몇 장이 전부였다. 세기의 특종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텅 빈 껍데기였던 셈이다. 생생함은 취재의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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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완성된 계획

이 대담한 계획은 1년 남짓한 기간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1971년 초 어빙은 출판사에 처음 자서전을 제안했고, 곧이어 위조한 편지들이 진짜로 인정받으면서 그해 여름 정식 계약이 성사되었다. 가을이 되자 스위스의 한 은행에서는 거액의 수표가 조용히 현금으로 바뀌고 있었다. 원고가 완성되자 출판사는 세기의 독점작을 대대적으로 예고했다. 그러나 바로 그 요란한 발표가 세상에 알려진 순간, 15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침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진짜 하워드 휴스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빙의 계획을 위협한 것은 그 계획의 성공 자체였다. 조용히 진행될 때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이야기가, 세기의 특종으로 요란하게 포장되는 순간 세상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이목은 오직 한 사람, 정작 이 이야기의 주인공에게까지 닿고 말았다. 침묵 속에 있던 휴스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팔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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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들려온 목소리

1972년 1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15년 동안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던 하워드 휴스가 직접 전화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오래전부터 알던 기자 7명을 전화로 연결해, 그 자서전이 완전한 거짓이라고 밝혔다. 얼굴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이 이례적인 회견에서, 그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이런 책을 맡긴 적도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어빙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단 하나의 사건이,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완벽했던 거짓말은 바로 그 주인공의 목소리 하나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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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기의 특종

진실이 드러나자 모든 것이 빠르게 무너졌다. 수사관들은 스위스 계좌에서 수표를 찾아간 인물이 휴스가 아니라 어빙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짜 신분과 위조된 편지, 존재하지 않던 만남까지 하나씩 세상에 드러났다. 어빙은 결국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유죄를 선고받아 17개월 가까이 수감되었다. 그의 아내와 자료를 모아 준 조력자 역시 처벌을 피하지 못했으며, 출판사가 건넨 거액은 대부분 되돌려졌다. 세상을 완벽하게 속일 뻔했던 책은, 결국 세기의 특종이 아니라 세기의 사기극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자서전이 아니라, 자서전을 둘러싼 몰락 그 자체였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세상의 주목은 마침내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것은 위대한 작가로서가 아니라 희대의 사기꾼으로서의 주목이었다. 완벽한 거짓말을 완성했다는 자부심은, 그 거짓말이 남김없이 폭로되면서 오히려 가장 무거운 대가로 돌아왔다. 그는 세상을 속인 이야기꾼으로 기억되기를 바랐으나, 결국 세상에 속내를 들킨 사람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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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의심하라

어빙의 사기가 거의 성공할 뻔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오히려 더 쉽게 믿었다. 반박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반대의 교훈을 남긴다. 검증이 불가능한 정보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독점적인 이야기일수록, 그 뒤에 누가 서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은둔은 침묵이 아니며,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진실도 언젠가는 목소리를 되찾는다. 가장 반박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야기가, 때로는 가장 정교한 함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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