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일 만에 사라진 40조 원
단 3일이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40조 원이 흔적도 없이 증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것이 전부였다. 무너뜨린 것은 총도, 해킹도, 정부의 규제도 아니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약속했던 코인 하나였다. 그 코인을 만든 사람은 이제 막 서른이 된 한국의 청년이었고, 그는 자신의 코인을 인류가 설계한 가장 안전한 화폐라고 불렀다. 그러나 첫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 순간, 세상 그 누구도 이 붕괴를 멈추지 못했다. 이 글은 2022년 5월,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거대한 붕괴로 기록된 테라와 루나 사건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는다.
2. 달러가 없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발상
이야기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청년이 세운 회사의 이름은 테라폼랩스였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것은 테라와, 그 짝인 루나라는 두 개의 코인이었다. 테라는 언제나 정확히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이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요동치는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늘 특정 가치에 고정되도록 만든 코인을 뜻한다. 문제는 그 고정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있었다.

보통의 스테이블코인은 실제 달러나 국채를 금고에 쌓아두고 딱 그만큼만 코인을 발행한다. 대표적인 테더나 USD코인이 그런 방식이다. 코인 1개당 진짜 1달러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값이 흔들려도 언제든 되사줄 수 있다. 이런 구조를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청년의 코인은 금고에 달러가 단 한 푼도 없었다. 대신 컴퓨터 알고리즘과 루나라는 자매 코인만으로 1달러를 떠받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을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라 부르는데, 사실 그 이전에도 여러 프로젝트가 같은 방식을 시도했다가 모조리 무너진 전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테라는 자신만은 다르다고 믿었다.
3. 두 개의 코인, 테라와 루나
작동 원리는 이랬다. 테라의 값이 1달러보다 떨어지면 시스템은 테라를 거둬들이고 그만큼 루나를 새로 찍어 보상으로 준다. 반대로 테라가 1달러보다 비싸지면 루나를 태워 없애고 테라를 더 발행한다. 두 코인이 시소처럼 서로를 밀고 당기며 균형을 맞추는 구조였다.

수학적으로는 그럴듯했다. 실제로 세계 곳곳의 개발자와 투자자들이 이 설계를 두고 혁신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 완벽해 보이는 수학에는 아무도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은 치명적인 전제가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루나를 믿고 사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4. 연 20%라는 마법의 숫자
사람들이 이토록 테라에 몰려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은행 비슷한 서비스였다. 테라를 여기에 맡기기만 하면 연 20%의 이자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은행 예금 이자가 1%도 되지 않던 시절, 연 20%는 마법 같은 숫자였다.

순식간에 14조 원에 가까운 돈이 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러나 그 이자는 어디서도 벌어들이는 돈이 아니었다. 회사가 자기 곳간을 헐어 메우는, 전형적인 밑 빠진 독이었다. 이자를 대주던 준비금은 약 7천만 달러 수준에서 바닥을 향해 빠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점부터 이미 준비금이 몇 달 안에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런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눈앞의 연 20%가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곳간이 완전히 비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때는 아무도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
5. 왕좌에 오른 청년
2021년, 이 청년은 암호화폐 세계의 새로운 왕으로 떠올랐다. 테라와 루나를 합친 가치는 한때 4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의 팬들은 스스로를 루나틱이라 부르며 열광했다. 어떤 투자자는 집을 담보로, 어떤 이는 은퇴 자금을 털어 이 코인에 미래를 걸었다.

청년은 온라인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을 대놓고 조롱했다. 한 경제학자가 이 구조는 반드시 무너진다고 경고하자,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논쟁하지 않는다는 말로 받아쳤다. 그 한마디에 추종자들은 환호했고, 비판하던 목소리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자신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를 향한 신뢰는 종교에 가까웠고, 의심은 곧 배신으로 취급됐다. 바로 이 맹목적인 믿음이야말로, 훗날 붕괴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 진짜 연료였다. 사람들은 코인을 산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확신을 산 셈이었다.
6. 세상에서 가장 큰 경제를 만들겠다는 선언
청년의 자신감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는 공개 석상의 무대 위에서 자기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탈중앙 경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조명 아래의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의 밑바닥에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 모든 구조는 오직 사람들이 계속 루나를 믿고 사줄 때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믿음이 흔들려 너도나도 팔기 시작하면, 루나 가격이 떨어지고, 값이 떨어진 루나는 테라를 떠받칠 힘을 잃는다. 그러면 테라가 무너지고, 무너진 테라는 다시 루나를 끌어내린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이 소용돌이에는 이미 섬뜩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7. 죽음의 나선
그 소용돌이의 이름은 죽음의 나선이었다. 작동 방식은 소름 끼칠 만큼 단순했다. 시작은 연 20% 이자라는 미끼였다. 그것은 전 세계의 돈을 빨아들였지만, 동시에 무너질 때 한꺼번에 빠져나갈 돈의 크기이기도 했다.

그다음은 방아쇠였다. 누군가 거액의 테라를 한꺼번에 시장에 던지면 1달러의 균형이 흔들린다. 이어지는 것은 공포였다. 불안해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돈을 빼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가장 무서웠다. 테라를 떠받치려 루나가 끝도 없이 찍혀 나오고, 시장에 넘쳐난 루나의 가치는 순식간에 0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설계자는 이 나선이 절대 시작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8. 2022년 5월, 사흘의 붕괴
2022년 5월 7일, 루나 한 개의 값은 약 119달러였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위 안에 드는 어엿한 자산이었다. 바로 그날, 앵커에서 20억 달러가 넘는 테라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테라의 값이 1달러 아래로 슬며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겨우 몇 센트짜리 균열에 불과했다. 청년은 위기에 대비해 미리 사 모아두었던 수십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풀어 방어에 나섰다. 실제로 테라 진영은 붕괴 직전 대규모 비트코인을 준비금으로 확보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나선의 힘은 그 방어벽마저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5월 9일 테라는 1달러라는 약속을 완전히 놓아버렸고, 5월 12일에는 루나가 하루 만에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었다. 세계 최대 거래소들은 거래 자체를 멈춰 세웠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5월 13일, 119달러였던 루나는 0.0001달러가 되었다. 사실상 완전한 0이었다. 이 붕괴는 테라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테라에 얽혀 있던 헤지펀드와 대출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그해 여름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긴 겨울로 빠져들었다.
9. 무너진 사람들
붕괴가 남긴 것은 숫자가 아니라 무너진 사람들의 삶이었다.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K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결혼 자금과 노후 대비로 모은 돈 전부를 이 코인에 넣어두고 있었다. 연 20% 이자면 몇 년 안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붕괴가 시작되던 밤, K씨는 잠들지 못하고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잔고는 반토막이 났고, 아침이 오자 숫자는 0에 가까웠다. 그는 훗날 3일 만에 20년이 사라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피해자가 전 세계에 수십만 명이었다. 누군가는 전 재산을, 누군가는 자신을 지탱하던 마지막 희망까지 잃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룻밤 사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 어린 글이 넘쳐났다. 그중에는 대출을 받아 투자한 사람도, 부모님 몰래 등록금을 넣은 학생도 있었다. 테라와 루나의 붕괴가 특히 잔인했던 이유는, 그것이 위험한 도박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저축이라는 얼굴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잃은 것이 아니라, 안전을 믿었기에 잃은 돈이었다.
10. 도주, 그리고 징역 15년
전 세계 40조 원이 재로 변한 그 순간에도, 청년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 세계를 떠돌았다. 이듬해 3월, 위조된 코스타리카 여권을 들고 두바이로 떠나려다 몬테네그로의 한 공항에서 붙잡혔다.

길고 지루한 법적 다툼 끝에 2025년 3월, 그는 미국 법정 앞으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그해 12월, 법정은 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판사는 이 사건을 세대를 통틀어 손꼽힐 규모의 사기라고 규정했다. 검찰이 요청한 12년보다도, 변호인이 바랐던 5년보다도 훨씬 무거운 형량이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큰 경제를 만들겠다던 청년에게 남은 것은, 15년이라는 시간과 그가 무너뜨린 수십만 명의 이름뿐이었다.
11.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신호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던 그 코인은, 애초에 사람들의 믿음 위에 지어진 모래성이었다. 담보가 실물이 아니라 또 다른 코인, 그리고 그 코인을 향한 신뢰뿐이었기 때문이다.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 모든 것은 스스로 붕괴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신호는 분명하다. 위험이 전혀 없다면서 은행의 스무 배가 넘는 이자를 약속한다면, 그 돈은 어디선가 새로 들어오는 다른 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연 20%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100년 전 찰스 폰지가 벌인 사기부터 오늘날의 코인 사기까지, 무너진 구조들은 하나같이 앞사람의 수익을 뒷사람의 돈으로 메우는 똑같은 뼈대를 하고 있었다. 이름과 포장만 최신 기술로 바뀌었을 뿐이다. 테라와 루나가 남긴 40조 원의 잿더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는 오래된 유혹의 가장 최근 이름일 뿐이다. 다음에 누군가 절대 손해 보지 않는 투자라는 말을 꺼낸다면, 우리는 이 사흘의 붕괴를 떠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