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억 달러의 구멍, 그리고 자백
2011년, 거대 은행 유비에스가 발칵 뒤집혔다. 단 한 명의 트레이더가 23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놀라운 대목은 손실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에 드러난 방식이었다.
그를 끝장낸 사람은 검찰도, 상사도, 외부 감사도 아니었다. 바로 트레이더 자신이었다. 어느 날 그는 회사에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고, 그 안에는 3년간 숨겨온 모든 진실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은행을 뒤흔든 구멍은, 한 청년의 책상 위 컴퓨터에서 시작되어 그 자신의 손끝에서 세상에 드러났다. 그의 이름은 케웨쿠 아도볼리였다.

가나에서 온 모범 트레이더
케웨쿠 아도볼리는 가나 출신으로, 유엔에서 일하던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자랐다. 그는 영국의 명문 기숙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 직후 곧바로 유비에스에 입사한 엘리트였다.
그의 경력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처음에 거래를 직접 하는 자리가 아니라, 거래를 지원하는 후방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서는 트레이더들의 거래가 어떻게 기록되고 정산되며 검증되는지를 다루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은행의 거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안쪽을 속속들이 배웠다.
동료들은 그를 성실하고 야심 찬 청년으로 기억했다. 이후 그는 상장지수펀드, 즉 ETF를 다루는 트레이딩 데스크로 옮겨 본격적인 트레이더가 되었다. 아무도 이 모범적인 청년이 훗날 거대한 은행을 뒤흔들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후방 부서에서 배운 비밀
아도볼리의 가장 위험한 자산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후방 부서에서 쌓은 지식이었다. 은행에서 트레이더의 모든 거래는 후방 부서가 기록하고 검증하며, 위험 한도를 넘지 않는지 감시한다. 이 시스템은 트레이더가 회사를 과도한 위험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막는 핵심 안전장치다.

그런데 아도볼리는 그 안전장치가 정확히 어디에서 빈틈을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짜 거래를 장부에 입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진짜 거래에서 손실이 나면, 그 손실을 상쇄하는 것처럼 보이는 허구의 거래를 만들어 끼워 넣었다. 이런 가짜 거래는 며칠 뒤 정산이 이루어지기 전에 삭제하거나 다른 가짜 거래로 교체하면 되었다. 감시 시스템의 눈에는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룬 정상적인 상태로 보였다.
3년간 자라난 거짓
이 조작은 2008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무려 3년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작은 손실을 잠시 가리려는 시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거짓은 한번 시작되자 스스로를 키워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가린 손실을 메우기 위해 그는 점점 더 큰 베팅에 손을 댔고, 그 베팅이 또 손실을 내면 다시 더 큰 가짜 거래로 덮어야 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도, 그리고 시장이 출렁이던 이후의 시기에도, 그는 가짜 장부라는 외줄 위에서 끝없이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한때는 손실을 만회하며 잠시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그가 짊어진 위험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로그 트레이더, 즉 통제를 벗어난 트레이더의 전형적인 심리가 드러난다. 그들은 처음부터 회사 돈을 훔치려는 도둑이 아니다. 오히려 손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존심과, 다음 거래에서 만회할 수 있다는 도박꾼의 낙관이 그들을 점점 더 깊은 거짓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아도볼리 역시 자신의 개인 계좌로 돈을 빼돌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쌓은 손실은 모두 회사의 장부 위에 있었다. 그는 도둑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짓의 외줄에서 끝내 떨어진 사람이었다.
한도를 240배 넘긴 베팅
아도볼리에게 허용된 위험 한도는 명확했다. 그의 데스크가 하루 동안 짊어질 수 있는 위험은 1억 달러, 밤사이 넘길 수 있는 위험은 5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1년 여름, 그가 실제로 짊어진 위험 노출은 무려 12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허용된 한도의 약 24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한 사람의 트레이더가, 회사가 정한 안전선을 240배나 넘어선 채 시장과 도박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시장이 조금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여도 회사 전체가 휘청일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 위에 올라타 있었다.
거짓을 떠받친 세 가지
이 무모한 도박이 3년이나 들키지 않은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아도볼리 자신의 내부 지식이었다. 그는 감시 시스템이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놓치는지 정확히 알았다. 두 번째는 수익이라는 달콤한 가림막이었다. 그가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의 거래 방식을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는 훗날 회사가 이익이 나는 한 규칙 위반에 눈을 감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느슨한 통제 문화였다. 거래량이 폭증하던 시기, 감시 인력은 늘 부족했고 경고 신호는 일상의 소음 속에 묻혔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거대한 구멍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회사가 눈을 감았다는 항변
법정에 선 아도볼리의 방어 논리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것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이익이 나는 한 규칙을 어기는 것을 묵인했고, 동료와 상사들도 자신이 한도를 넘나드는 것을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이 사익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자신은 회사를 위해 돈을 벌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청년의 일탈인가, 아니면 탐욕에 눈먼 조직 전체의 문제인가. 이 질문은 재판 내내 무겁게 법정을 짓눌렀다. 실제로 이 사건은 금융권 전체의 위험 관리 문화에 대한 깊은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스스로 보낸 자백 이메일
거짓의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던 아도볼리는, 2011년 9월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더 이상 손실을 숨길 수 없게 된 그는, 누구의 추궁도 받기 전에 스스로 무너졌다.

그는 회사 재무 책임자에게 한 통의 장문 이메일을 보냈다. 그 안에는 자신이 그동안 한도를 넘는 거래를 해왔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가짜 거래를 입력했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그는 메일에서 깊은 후회와 사과를 전했다. 자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자백 이메일은 사건의 성격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검찰에게 그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회사를 속였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반면 변호인에게 그것은 그가 끝내 양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진실을 털어놓은, 정상 참작의 근거였다. 같은 한 통의 글이, 그를 단죄하는 칼이자 동시에 그를 변호하는 방패가 되었다.

7년형, 그리고 추방
2012년 11월, 런던의 배심원단은 8주에 걸친 긴 재판 끝에 평결을 내렸다. 그들은 아도볼리에게 두 건의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판사는 그에게 7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형기로 끝나지 않았다. 가나 국적이었던 아도볼리는 형기를 마친 뒤,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영국에서 끝내 추방되고 말았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영국에 있었지만, 한 번의 범죄가 그의 삶의 터전 전부를 앗아간 것이다. 그는 출소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권의 위험한 문화에 대해 경고하는 강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치며: 구멍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아도볼리 사건이 남긴 질문은 단순한 한 사람의 욕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은행의 정교한 감시 시스템은, 정작 그 시스템을 가장 잘 아는 내부자 앞에서 무력했다. 그리고 그가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위험의 그림자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결과가 좋으면 과정의 문제를 외면한다. 수익이라는 가림막은 가장 위험한 신호조차 무해한 소음으로 바꿔놓는다. 이 사건 이후 유비에스를 비롯한 세계의 거대 은행들은 위험 관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트레이더와 후방 부서의 권한을 더 엄격히 분리하고, 비정상적인 거래 패턴을 자동으로 잡아내는 감시 장치를 강화했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도 결국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그의 동료였다면, 한도를 넘나드는 거래를 보고도 수익이라는 이유로 침묵했을까. 아니면 위험을 알리는 목소리를 냈을까. 아도볼리의 23억 달러짜리 구멍은, 결국 한 개인의 문제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를 끝내 무너뜨린 것이 외부의 감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양심이었다는 사실은, 이 어두운 이야기에 한 줄기 묘한 여운을 남긴다.